나를 변화시킨 ‘한 권의 책’ 돈키호테
2011년 04월 11일(월) 10:43 [경산신문]
초등학교 4학년(당시는 국민학교) 때로 기억된다. 여름 한참 무더위가 심하여 피할 곳이라고는 삐거덕대는 선풍기 앞이 유일했으나 그곳은 이미 아버님께서 점령하시고 하는 수 없이 동네 아이들과 금호강 다리 밑으로 미역을 감으러 갔었다. 촌 동네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놀이라고는 그것이 전부였던 것이다. 하루 온종일 강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데 우리 집 앞에 같은 반 여자 친구가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있었다. 웬일인가 싶었는데 생일선물이라며 포장된 것을 하나 주고는 뛰어가는 것이다.
일단 충격이었다. 선물이라고는 부모님 외에 한 번도 받아 본 기억이 없는 촌아이가 선물을 그것도 같은 반 여자친구에게 받았으니 신기하기도 놀랍기도 했다. 부리나케 방으로 뛰어가서 포장지를 뜯어보았더니 ‘한 권의 책’이었다.
책의 표지에는 굵고 큰 칼라글씨로 <돈키호테>라고 멋지게 인쇄되어 있었고, 그 밑에 작은 글씨로 저자 세르반테스라고 기록되어 있었다. 두 번째 충격이었다. 왜냐하면, 그 때까지 내 앉은뱅이책상에 꽂혀있는 책이라고는 교과서와 전과가 전부였던 것이다. 촌놈의 머릿속에 ‘교과서와 전과 말고도 책이 있구나’ 하는 생각이 들어왔고, 앉기도 하고 엎드리기도 하며 읽기 시작했다. 세 번째 충격이었다.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.
스페인의 라만차 마을에 ‘케사더’라는 노인이 중세의 기사 모험담에 매료되어 낡고 녹슨 갑옷을 차려 입고, 늙고 말라빠진 말 로시난테에 올라타는 모습이 눈에 선했고, 풍차를 거인으로 알고 덤볐다가 나가떨어지고, 여관을 성으로 착각하고 여관 주인에게 기사 작위를 받기도 하며, 죄 없는 시골 사람들을 적이며 마귀로 오인하고 덤벼드는 모습에서는 배꼽을 잡고 웃기도 하고, 주위 사람들이 그를 오해해서 화를 내며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에서는 돈키호테가 안타깝기도 했다. 그렇게 그 밤에 한 권의 책을 다 읽었고, 그것은 멋진 첫 경험이었다. ‘한 권의 책을 하룻밤에 완독한 멋진 첫 경험’.
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어린 촌놈에게 감동 이상의 즐거움을 주었고, 촌아이의 마음에 중요한 생각을 새겼다. “책은 어떤 것보다 재미있는 것, 독서는 상상의 세계를 펼쳐주는 것” 그 때부터 책에 대한 목마름이 시작되었고, 책을 구하기 위한 순례가 시작되었다. 국민학교 교실 뒤편에 촌학교라고 서울의 국민학교에서 보내준 책들을 빌려다 읽었고, 부잣집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장식용으로 꽂아둔 책들을 ‘잘난 척 하지 말라’는 친구의 비꼬임을 이겨가며 60권짜리 위인전기를 다 빌려 읽었다. 그리고 청년이 되어서는 대구시내 헌책방을 다니면서 먼지를 털며 책을 구하여 읽었다.
책에 대한 목마름과 독서로 인한 행복누림은 한 권의 책 <돈키호테>로부터 시작된 것이다. 지금은 경산마가교회의 담임목사로, 아가페지역아동센터와 스토르게그룹홈 대표로, 아가페어린이문고 운영자로 일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마치 돈키호테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.
“책은 사람을 바꾸고, 사람은 세상을 바꾼다”
이세국 아가페어린이문고 대표 (경산마가교회 담임목사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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